(대학교 문예사조 수업 정리 내용)
유럽과 문화의 관계는 기원전 2만년으로 돌아간다, 빌렌도르프 비너스상, 라스코 벽화는 문명이 존재한 사례로 여겨졌다.
기원전 5000년에는 유럽에서 계층적 사회가 생겨났고, 그러한 사회들은 농업의 발달을 기초로 하여 성장하였다.
정치적 시대는 로마와 비잔틴으로 시작한다. 유럽의 역사는 로마의 전성기에서 시작한다. 모든 시대에는 유럽인들의 삶을 바꾸는 사건들이 있었다 권력과 정치, 문화가 긴밀히 영향을 주며 변화하였다. 문명은 그리스와 로마를 중심으로 한 유럽에서 빠르게 발전했지만,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가 아닌 야만족도 존재했다.
농업은 대륙 전체에 존재하는 주류 생산 활동이었다. 기원전 2000년 무렵 청동문화를 전수받고 기술적 발전을 이룬다.
기원전 1000년경 그리스의 번영이 극에 달한다.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서로 경쟁하며 빠르게 발달하였다. 이에 위협을 느낀 로마는 대륙에서의 통제권을 확장하고자 한다. 동맹을 구축하여 그리스를 공격하였고, 그러한 정복 활동은 각지로 퍼져 나가 유럽에서 로마가 중심이 되게 만든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에 이르러서는 로마 시대의 황금기가 되어 나라는 번영하고 안정되었다. 많은 작가와 예술가를 장려하며 문화의 성장을 이루었다. 로마제국은 기원전 4세기에 멸망하였지만, 그 이전까지 다양한 사회 구조 정착을 위해 노력하였다. 경제가 보편화 되었고 정치와 사회 등 많은 분야를 발전시킨다.
로마제국의 종말로 유럽 고대 사회는 끝이 난다. 유럽의 위치를 정밀히 말하기는 여전히 어렵지만, 중부 유럽의 영향을 받아 주변에서 많은 나라들이 생기고 문화를 받아들인다.
중세는 생각보다 짧지 않고, 로마 제국 시대에서 시작하여 1000년 동안 지속 및 쇠퇴하였다.
로마가 멸망한 후 사람들이 황폐한 도시를 떠나 흩어진다. 유럽은 9세기에 들어서 인구의 최저치를 경험한다. 이슬람 세력이 정복전쟁을 와 많은 나라를 함락하지만 프랑스에서 진격을 저지한다.
한 차례 황폐화 후 오히려 농업과 인구가 늘어나고 왕과 도시가 일어나 유럽을 다스리기 시작하였다. 900년 이후 농업 기술은 비약적 발전을 이루고 이에 따라 폭증한 생산량은 주변 도시의 성장을 도왔다. 유럽 사람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숲과 동유럽을 개간하기 시작하여 발트해 주변까지 발달시킨다. 1000~1250년 사이의 시대는 발달의 시대였고 유럽의 번영기였지만, 1250년 이후 인구는 다시 감소하고 번영은 멈추게 된다.
강력한 왕국간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바로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이다. 이에 더불어 금융부패와 전염병으로 전 유럽은 고통을 받는다. 페스트로 인해 유럽 전체 인구의3분의 1이 사망하였고 이 역병은 3년간 지속되었다. 이로 인해 봉건제도로 철저히 관리된 영토는 쇠퇴하였고 통치자와 귀족의 지위는 상실되었다. 부유한 상인이 기사와 왕가보다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 사이 인쇄의 발달로 일반인의 문장 이해력이 커지고 사고가 성장하여 정치와 사회 경제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무렵은 모든 변화는 현대 역사 시대를 태동하였다. 예술과 문학이 발달하였다. 중세시대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가 발달하였고 자신의 생각을 이전보다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였다.
르네상스 시대가 되어, 많은 예술가와 정치 세력은 사람에 대한 더 많은 이해를 요구하였다. 종교와 교황은 중요성을 잃었고, 모두들 문학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권위를 없애고 글을 모두에게 나누고자 하였기에 자국어로 문학 작품을 기록하곤 하였다. 사람들은 특별한 이야기 대신 그 당시를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를 담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회는 구전문학을 잘 받아들여서 중세시대의 작가가 많을 수는 없었다.
백년전쟁도 있었다. 프랑스의 지역에서 영국의 지원으로 반란이 일어난다. 전쟁은 생각보다 장기화 되었는데, 영국의 재정난으로 프랑스가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황폐화 이후 또다시 발전을 이루며 이번에는 무역과 상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번영한 지역 이외에 다른 지역을 중심으로도 무역로가 새롭게 구축되었고 장거리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무역 중심지로 상인과 기술 장인들이 모였는데, 이들만의 세력 또한 구축하여 장인을 장악하려는 왕권의 시도로부터 스스로 자유를 지켰다. 중동에서 돌아온 십자군은 해외에서 생산된 향료 등을 소개하였고, 무역로는 더욱 발달하였다.
중세시대에는 교회가 사람들에 대한 지배권을 크게 행사하였다. 치명적 전염병으로 사람들은 교회의 권위를 불신하게 되었다. 교회는 영적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신뢰를 잃었다. 사람들은 구원이 교황에게서 나오지 않으며 왕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13~14세기는 깨달음의 시기였다. 유럽은 예술, 교육, 사회의 부흥을 경험한다.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되어 곧 유럽 전체가 과학과 실험에 관심을 가진다. 내세보다 현세에 관심을 가지고, 지금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하였다. 교회는 구원과 내세를 강조였지만 그 반대의 모습이었다. 르네상스 시기에 예술가들은 새로운 스타일과 기술 도입하였다. 예술과 문화의 폭발로 또 다른 번영을 이룬 유럽이 현대적인 시대 포용할 준비를 마치고, 자신의 예술과 문화에 대한 통찰을 얻었다. 중세시대에 뿌리를 두는 기관들은 르네상스에 변화하게 된다.
탐험의 시대가 되어 15~16세기에는 많은 나라들이 해상 항해에 투자한다. 유럽에 탐험의 시대가 찾아오게 되었다. 바다 항해가 절정에 이르고 많은 교류가 생겼다. 탐험가가 더 나은 선박 설계와 기술로 새로운 경로, 효율적 경로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새로운 땅을 찾기 위해 경쟁하였다. 두 나라에서 이룬 업적이 많으나 그 외에도 영국과 프랑스 등의 나라에서 많은 탐험가가 있었고 새로운 땅과 교역로를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났다. 해상 개척과 탐험의 시대를 지나며 유럽은 다른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게 되었다.
유럽 많은 나라의 문화 차이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많은 나라들을 한 데로 묶었다. 하지만 세력이 커지며 교회는 부패하게 되었고 부를 축적하는데 관심을 두어 발행한 면죄부 사건으로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다. 교회는 일반인에게 그들의 권위를 남용하였고 이에 반발한 종교운동의 시작이 정치와 사회, 경제, 문화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친다. 사람들에게 교육이 필요하며, 모든 이가 성경을 읽을 수 있어야 함 등을 주장하였다. 많은 개혁 세력에 대항하여 교회 역시 신념을 그대로 가지고 조금씩 모습을 바꾸는 식으로 대처하였다.
종교전쟁이 끝나고 균형이 필요하게 되었다. 절대적 진리 대신 새로운 개념과 교리가 퍼지고 절대왕정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통치자들은 봉건제를 끝내고자 하며 평등을 강조하였다. 철학과 과학, 의학이 발달하였고 지식의 수준이 늘어난 사람들은 삶과 종교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되었다. 계몽주의는 우리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교육 수준이 높아지며 지성과 사상의 자유를 추구하게 된 사람들이었지만 교회와 반목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종교를 장려하고, 교회에서는 사회를 돕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다. 프랑스 역사상 중요한 사건으로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호화로운 사치 생활과 반대로 식량 공급은 감소하고, 빈곤과 사망, 파괴는 사람들의 삶을 힘들게 만들어갔다. 이로 인해 분노한 시민들로 반란이 일어나고 왕족과 귀족은 베르사유를 떠나 투옥되었다. 프랑스의 혁명가들은 새로운 정부를 만든다. 종교와 과세 평등, 언론 표현의 자유를 약속한다. 헌법이 등장하고 공화국 체제가 등장하였으며 의회와 선거제도가 정립되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공포정치와 군주제의 복귀를 두려워하였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등장하게 된다. 나폴레옹은 부르주아에게서 소요 진정을 위해 파견되었지만 쿠데타를 일으키고 본인이 국가를 장악하였다. 종교, 법규 등 자유를 지지하는 한편 군사독재자로 공략에 실패한 영국을 빼고 많은 지역 장악하였다. 대륙을 장악한 뒤 경제적 요소를 통제하고자 시도하여 대륙과 영국의 교역을 방해하지만 실패로 돌아간다. 러시아와의 전쟁을 시도하지만 실패하였고 동맹군에게 패배하여 엘바 섬으로 유배된다. 탈출하지만 다시 투옥되고,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죽을 때 까지 여생을 보낸다.
공업과 산업이 발달하며 국가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경제적, 공업적 경쟁이 생긴다. 그 중 특히나 영국과 독일 사이에서 크게 경쟁이 일어나고 군사적 대립으로까지 이어지는데, 영국과 프랑스는 동맹관계를 두터이 하였다. 그 반면에 독일은 러시아와의 동맹 및 다른 국가와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정치적 선택의 실수였는지, 독일의 외교 정책은 1차 세계대전의 이유가 되었다. 결국 발발한 전쟁은 연합군이 독일 요새를 돌파하며 종전되었다. 유럽은 처음 겪는 대규모의 전쟁으로 많은 젊은 세대를 잃었고, 전쟁이 돈과 건물 이상의 피해를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륙은 전쟁의 영향으로 황폐화 되었다. 왕정은 완전히 무너지고 민주적 정부가 등장하였다. 종전 이후 패전국에게는 조약이 강력하게 채결되었는데, 이에 반발을 가진 독일은 오스트리아와 폴란드 등 주변국을 합병하기 시작하고, 이를 경계하던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과의 전쟁을 다시 시작한다. 이탈리아와 일본이 독일을 지원하고, 이외 모든 국가의 연합이 이루어 졌으며 연합군이 전쟁의 승리를 가져간다.
2차세계대전 후 유럽은 새로운 시대를 맞았다. 많은 분쟁은 해결되었고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되었다. 21세기에 이르기까지 현대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구축하였고 경제가 강화되며, 각국의 정부가 세계 발달에 기여하였다.
현재 유럽은 안정된 국가 형태, 사회제도,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다.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고 산업과 경제의 발달 속도가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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